실사판 '원피스'를 보았다. 워낙 팬층이 두터운 만화라(주변에 루피란 별명이나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 기대감도 컸다. 하지만 원작에 대한 충성심이 없던 나는 덤덤하게 1편을 보고 기대심을 접어버렸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의 재현은 놀라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설픈 액션신과 늘어지는 연출, 무엇보다 가상인줄 알지만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매력이 없었다. 문제는 몇몇 유명 유튜버에서 소개한 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적지 않은 유튜버들이 기대 이상이라고 칭찬하고 있지 않은가. 평범한 시청자로서의 평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사실 자주 있는 일이다.
구 신사임당 주언규 씨가 새 책을 냈다. 대단한 멘탈이다. 그 욕을 다 먹으면서도 책을 쓰고 있었다니. 어쨌든 하드 커버의 비싼 책을 빠르게 읽었다. 메시지는 선명했다.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다른 성공한 롤모델을 분해해서 다양하게 시도해보았다는 거였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쓴 책 스몰 스텝이 떠올라 반갑기도 했다. 한 번에 크게 성공하기보다 작은 성공을 반복한다는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이 책은 은연 중에 자신의 '카피'를 '모방'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가 가르친 유튜브 성장술?은 이 정도의 모방이 아니었지 않은가.
그러나 책은 일관되게 모방의 유용함과 작지만 다양한 시도를 강조한다. 이런 류의 책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확언은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시도하되 결과는 '운'에 맡기라고 이야기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가 이런 말을 하는게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이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순풍에 돛 단 듯 팔려나가고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뭔가 있으니까 팔리는 거겠지. 나는 별로지만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마치 내가 본 주관적인 평이 몇몇 유명 유튜버들의 평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유튜버들이 제작사의 영향을 전혀 안받았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답게 산다는건 자신만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에 따라 매 순간 일관된 선택을 하는 삶을 말한다. 그런데 이건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노력은 할 수 있다. 주언규의 책을 보고 도움을 받을 여지는 충분하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에 놓였을 때 김미경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국으로 가서 영어를 배우는 선택을 했다. 나는 적어도 주언규보다는 김미경의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내게는 메시지 만큼이나 메신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럴 일은 없겠으나) 나 역시 비슷한 상황을 만난다면? 주언규가 아닌 김미경의 선택을 할 것이다.
p.s. 참고로 '슈퍼노멀'이라는 책 제목은 일본의 유명한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철학에서 그대로 가져온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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