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나간 아들이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기뻤습니다. 지난 5년 간 마치 히키코모리처럼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던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이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것조차 반가웠습니다. 이 날은 아들이 대학 합격 이후 수강 신청을 했던 날입니다. 여간해서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던 아들입니다. 그런데 학교와 새로 만난 친구들, 교수 이야기를 하니 온갖 감정이 밀려옵니다. 가벼운 기타 소리와 간혹 들리던 기침 소리만 가득하던, 적막한 집이 오랫만에 조금은 더 수다스러워졌습니다.
아들은 중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계원예고라는 좋은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도 몇 달 되지 않아 도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긴 대학 입시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능 시험은 포기하고 오직 기타에만 매달렸습니다. 중학교 때 우연히 배운 기타가 아들에겐 마지막 하나 남은 동앗줄이었습니다. 다행히 첫해 실용음악과 3대장으로 불리는 호원대에 합격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꼭 가고 싶었던 학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서울예대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 했습니다. 이 정도 실력이면 다음 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인지 등록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작년엔 3대장 중 두 번째로 꼽히는 동아방송대 예비 1번을 받았습니다. 단 4명을 뽑는 이 입시에서 어느 한 아이도 등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수시와 정시 모두를 합쳐 단 한 곳도 붙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남은 유일한 학교가 서경대였습니다. 호원대가 합격생을 늘리는 바람에 신흥 강자로 불리는 학교입니다. 그런 학교에 아들이 붙은 것입니다. 군대 문제에 나이까지 많아 반쯤은 포기하던 그 시점에 아들이 합격을 했으니 좋고 나쁜 학교를 가릴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꿈 같은 합격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날 저는 마음 속으로 펑펑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들 심정은 아빠인 저조차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두 평 남짓한 자기 방에서 지난 5년 간 아들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요?
우리 부부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의 자퇴도 묵묵히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회사 생활이 그렇게나 힘이 들었었거든요. 평생 아버지의 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와이프도 다행히 생각이 같았습니다. 그게 뭐였든 자기 길을 갈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공부하란 말, 좋은 대학 가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로지 믿고 기다리고 할 수 있는 한 두 사람의 후원자로 남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연거푸 입시에 실패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이 편할리 없습니다. 어쩌면 다그쳐서 대학이라도 보내야 했나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낸 적은 없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고쳐잡고 이 길이 맞다고 되뇌곤 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음을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작 대학 하나에 붙었을 뿐입니다. 인서울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입니다. 그러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헛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기 생에 주어진 여러 번의 고비를 스스로 헤쳐나온 아들이 대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울러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과 시련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내린 결정, 그 긴 기다림이 열매가 되었음에 안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나다운 삶으로 인도한 우리의 믿음이, 꿈이 이뤄졌음에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앞으로의 아들의 삶을 위해서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말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응원을 보태주신다며 더욱 기쁠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오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