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남성적 상징물은 무엇입니까?”
1954년의 어느 날, 시카고의 광고 전문가 레오 버넷은 아이디어 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한 참석자가 '카우보이'라고 답했다. 광고 역사에 길이 남을 '말보로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레오 버넷은 여성을 겨냥한 말보로가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자 역으로 가장 남성적이고 독한 담배로 '컨셉'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 결과 50억 달러였던 말보로의 매출은 2년 후 200억 달러에 육박하며 대성공을 거둔다.
컨셉이란
무엇일까? 먼저 단어가 가진 원래의 뜻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컨셉은 'con'과 'cept'가 결합된 단어다. 먼저 ‘con-’은 ‘여럿을 하나로’라는 의미의 접두사이다. 예를 들어 콘테스트contest는 여럿이 함께con 치르는 시험test를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cept’는 ‘잡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농구나 축구에서 가로채기를 인터셉트intercept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컨셉에는 ‘잡다’는 의미와 ‘여럿을 하나로 묶는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컨셉은 한마디로 ‘여럿을 붙잡아 하나로 꿰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렇게 어원을 가지고 설명해도 컨셉은 여전히 모호한 면이 있다. 마치 사랑과 정의를 사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실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데는 별 의미가 없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럴 때는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학생들이 선생님의 첫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말보로 이야기다. 말을 타고 황야를 누비는 카우보이들의 사진을 떠올려 보자. 나처럼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말보로 담배의 짙은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이니스프리와 삼다수를 생각하면 '제주'가 떠오른다. 초코파이를 생각하면 '정'이라는 한자가 단박에 생각이 난다. 이 모두가 '컨셉' 잡기에 성공한 사례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브랜딩 과정에서 가장 난해한 과정이 바로 컨셉 도출이기도 하다. 뭔가 몽글몽글 떠오르지만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로 정리할 수 없는 경험을 정말로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별이 다섯개'라고 외치는 어느 중년의 두툼한? 얼굴이 부지불식간에 떠오른다. 장수침대가 성공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떠올렸을 때 단박에 떠오르는 이미지의 힘 때문이다. 컨셉은 이렇듯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브랜드를 설명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졌다. 혹시 '보물섬'의 원래 제목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바로 '바다의 요리사'이다.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스티븐슨이 이 제목으로 잡지에 연재했을 때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는 어느 척추관절 병원의 네이밍 작업을 의뢰받았다. 이 병원이 기대하는 병원 이름의 조건은 선명했다. 부르기 쉽지만 격이 느껴지는 제목일 것. 보통 척추관절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고령인 경우가 많다. 이런 분들은 아무리 뜻이 좋아도 영어나 외래어로 된 병원 이름은 기억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병원은 한창 유행하던 '대찬 병원'이나 '튼튼한 병원' 같은 너무 쉬운 우리말 이름도 싫다고 했다. 그래서 제안한 이름이 바로 '고든 병원'이었다. 우리말 '곧은'에서 따온 이 이름은 영어로 쓰면 'Gordon'이라는 단어로 표기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외국 작가의 이름이기도 하다. 지금 이 병원은 강서구 쪽에서 가장 잘 나가는 병원 중 하나가 되었다. 바로 쉽고 선명한 컨셉 덕분이었다.
'하겐다즈'는 놀랍게도 아무 뜻이 없는 이름이다. 게다가 유럽이 아닌 미국의 아이스크림이다. 이 회사는 유럽에 대한 동경을 가진 사람들을 끌기 위해 아예 세상에 없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포장지에는 유럽이 어느 거리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처럼 컨셉의 역할은 분명하다. 그 제품과 서비스를 단박에 떠올릴 수 있는 쉽고 선명한 단어, 혹은 이미지라야 한다. 그래야만 제품과 서비스의 특장점을 알리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을 압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마케팅 비용을 아낄 수 있는 의미도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엔 아쉽게도 '왕도'가 없다.
내가 운영하는 스브연(스몰 브랜드 연대)에는 '스위트리'라는 과일 가게가 하나 있다. 착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어떤 연상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과일 가게는 교회 목사님 출신의 아주 착하고 인정 넘치는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트리라는 이름에서는 그 어떤 관련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라면 차라리 '김 목사네 과일 가게'라고 이름 지었을 것이다. '리앤홍'이란 카페도 있다. 두 부부의 성을 땄다고 하지만 이 카페가 가진 2층 뷰와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주인장의 이미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다. 문득 교대에 있는 '이층집'이란 식당이 떠오른다. 2층이란 공간의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살린 케이스다. 컨셉이란 이처럼 규모로 승부할 수 없는 스몰 브랜드들에게 더욱 필요하고 강력한 마케팅과 브랜딩의 도구인 셈이다.
컨셉에 정답은 없다. 때로는 마법처럼 우연히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오래 오래 고민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다. 내가 가진 그 무엇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한 가지 조언은 해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1996년 두산은 뒤늦게 매실주 시장에 참여했다. 이미 1990년에 출시한 매취순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설중매'는 매실을 병 속에 집어 넣었다. 사실 과실이 술의 맛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숙성된 주정이 술맛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술의 특징을 눈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출시 2년 만에 매취순을 따라잡았다. 그러니 7번의 컨셉을 잡기 위해 1번의 Why로 돌아가 보자. 그래야만 남들이 갖지 못한 차별화된 컨셉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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