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송리단길의 '미자식당'이 문을 닫았다. 8년 간 이 길의 부흥을 이끈 식당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그 유명한 '카린지'도 문을 닫았다. '몽탄'으로 유명한 바비정이 만든 식당이다. 어디 그뿐인가. 노티드 도넛과 다운 타우너를 운영하는 GFFG가 만든 식당들도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비싼 임대료가 한몫 했을 것이다. 사실 건물주가 아닌 이상 임대로 다점포를 운영하는 것은 10년 정도의 시한부 경영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하물며 이제 막 이곳에서 가게를 시작하는 사장님들이라면 오죽 할까.
정말 고수인 창업자들은 건물 폭이 좁고 깊은 가게를 선호하지 않는다. 나중에 가게를 이전할 때 팔기 어렵기 때문이다. 계단이 있는 가게, 골목에서 움푹 들어간 구조도 싫어한다. 사람들이 가게 안 분위기를 살피는데 불리하기 때문이다. 천정이 낮은 가게도 이들은 절대 계약하지 않는다. 손님들이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수들은 로컬의 부동산들보다 한 지역 전역을 커버하는 중개 법인을 선호한다. 아무래도 시야가 넓고 더 많은 매물을 가지고 있어서다.
가게를 오픈할 때도 이들은 엉뚱한 데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가게 오픈을 위한 인테리어도 돈을 아낄 마음에 직접 철거를 했다가 사나흘 몸살을 앓는 건 기본이다. 부분적으로 사람을 부를지, 아니면 인테리어 전반을 맡길지는 비용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인이 정말 신경을 쏟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게의 입지와 동선을 살펴 보자. 정말 자신이 있지 않다면 주 동선에서 떨어진 가게를 얻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이 때 고수들은 네이버 로드뷰를 활용한다. 지난 10년 동안 거리의 가게들이 얼마나 간판을 바꿔 달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고수가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외식업의 '본질'이다. 이들은 부수적인 내용들은 과감하게 실무자들에게 위임한다. 그 대신 큰 그림을 그린다. 여기서 큰 그림이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외식업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이다. 어떤 브랜드는 외식업을 '오프라인 컨텐츠 사업'으로 이해한다. 공간과 비주얼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가게는 '저렴하고 신선한 음식' 그 자체를 철학으로 여긴다. 그래서 맛을 방해하는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고민이 유효한 이유는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다. 이런 원칙이 없다면 그때 그때의 트렌드와 유행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내가 만난 고수도 그랬다. 압도적으로 좋은 김치와 고기를 써서 대박난 김치찌개 집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만큼 압도적인 원가율로 인해 타협을 거듭했고 결국 간판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수년 간 남 좋은 일만 하다가 사업을 접은 케이스다. 이런 경험을 한 대표가 얼마나 시장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지는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이런 시장의 고수들이 하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외식업의 본질, 그리고 철학이다.
한때의 유행을 만들고 이끄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식업의 구조 상 처음부터 건물주가 되어 마음껏 하고 싶은 식당을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임대를 해서 들어가면 잘 안되도 문제, 잘 되도 문제다. 잘 되는 가게를 내쫓고 자신이 직접 가게를 하는 사례는 너무도 흔해서 새롭지도 않다. 그러니 부동산이 아닌 브랜드에 집중하는 유대인들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오랜 역사 동안 수시로 자신들이 가진 자산을 빼앗겨 왔다. 그래서 세상의 유명한 브랜드들의 대다수는 유대인들의 것이다. 빼앗을래야 빼앗을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블루 보틀이 건물주에 휘둘릴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사업의 규모와 유명세도 있겠지만 본질은 브랜드다. 이들은 매장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건물주들이 이들 브랜드를 유치하지 못해 안달이 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브랜드의 핵심에는 다름아닌 철학이 있다. 자신만의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오래도록 경영해온 가게는 입지에 영향받지 않는다. 건물주가 뺏을 수도 없다. 우리가 지양해야 할 스몰 브랜드의 정점에는 바로 그런 '철학'이 있다.
그러니 새로운 건물과 입지를 알아보고 인테리어를 할 시간에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끊임없이 답해 보자. 왜 이 업을 시작했으며 이 일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선명하게 다듬어 보자. 업의 본질이 '오프라인 콘텐츠'라면 공간과 비주얼을 어떤 컨셉으로 유지해갈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음식의 맛이 철학 그 자체라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 그런 정도의 고집이 없다면 당신의 식당도 5년 뒤 살아남을 확률이 겨우 20%인 장사에 만족해야 한다. 10년 반짝하는 장사를 하겠는가, 아니면 100년을 갈 브랜딩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가게를 오픈하고 준비하고 경영해야 할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