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외식업은 교육사업이 아닐까?
지방 소도시의 어느 설렁탕집 사장님을 만나고 왔다.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씀을 하시는데 내공이 상당하다. 2시간을 내리 들었는데 모든 이야기가 새롭다. 여느 화려한 스타트업 대표의 무용담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지평이 또 한 번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이렇듯 배움이란 전혀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이뤄지곤 한다. 아래의 내용은 그 배움의 아주 일부에 불과하지만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 기록해본다.
1.
이 설렁탕집은 가마솥 서너 개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사장님은 오래도록 고민했다고 한다. 오픈 주방까지는 그렇다 쳐도 굳이 핏물 빼는 모습, 역한 냄새까지 공개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장님은 이마저도 오픈해야 손님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반쪽짜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10년 된 이 가게는 지역 주민들로부터 비교할 수 없는 믿음과 평판을 얻고 있다. 역에서 이 가게를 말하자 택시 기사는 두 번 묻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은 진짜 맛집의 모습이다.
2.
그렇다면 이 신뢰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 사장님은 뜻밖에도 직원 얘기를 했다. 이 직원들이 식당의 평판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보는 식당의 모습은 아주 일부분이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주인을 비롯해 식당의 진짜 모습을 속속들이 안다. 그래서 이 사장님은 직원 교육에 가장 공을 들인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일히 지시하는 것도 아니다. 묵묵히 먼저 실천하며 알아들을 때까지 여섯 번이고 일곱 번이고 반복한다고 했다.
3.
예를 들어 손님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가정하자. 이 식당의 직원들은 일단 '알아보겠습니다'라고 먼저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원의 표정과 태도라고 한다. 굳이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손님들은 다름아닌 직원의 태도를 먼저 본다는 것이다. 그런 진상 손님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직원들의 눈치를 실제로도 많이 본다고 한다. 뭘 하나 시키려 해도 바쁘지는 않은지, 표정은 어떤지를 본 후에 부른다는 것이다. 사실 설렁탕은 변화를 주기 힘들고 맛의 편차가 작은 음식이다. 결국 10년 가는 식당은 이런 직원 교육에 성공한 식당인 셈인 것이다.
4.
주인은 5년 간 갈빗집을, 이후 10년 간 당구장을 한 후에 지금의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식당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마인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갈빗집에선 주로 생갈비를 팔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생갈비가 금방 상하기 쉬워서 매번 고민을 했다고 한다. 요 정도면 되겠지 하고 내놓으면 클레임이 들어오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식당은 조금씩 내리막길을 걸었다고 한다. 게다가 두 번 오지 않을 단체 손님 때문에 단골은 소리없이 점점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5.
그는 결국 외식업이 교육 사업이라고 했다. 식당 주인, 그리고 직원들의 마인드에 따라 10년도 가고 100년도 갈 수 있다고 했다. 식당이 망하는 이유는 대부분 이 마인드의 부재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준비되지 않은 주인, 교육받지 못한 직원들 때문에 5년이 채 가지 못해 열에 여덟은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식당에서 일하기 위한 자격증을 국가에서 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이 준비없이 시작해 망하는 식당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는 것이다.
6.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가장 바쁜 때를 가정해 음식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미리 준비한 음식, 미리 준비한 고기가 맛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장님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해 준비를 시킨다고 한다. 지레짐작이 아닌 요일별 매출과 메뉴를 분석해서 준비를 시킨다는 것이다. 이 식당 주인은 음식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다고 한다. 그런 아이디어를 주는 직원들에게는 별도로 상금을 지급할 정도로 진심이다. 하지만 직원이 조금 편하기 위해 맛을 건드린다면 그 식당은 결코 오래 갈 수 없다고 단언했다.
7.
식당이 목만 좋으면 됐지, 음식만 잘하면 됐지 하는 생각은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말이다.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중요한 것은 주인의 마인드, 거기서 일하는 직원들의 태도다. 특히나 설렁탕 같은 메뉴를 가지고 맛을 차별화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잘 교육된 직원들은 식당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주인이 있다. 외식업은 결국 이 주인의 신뢰를 파는 일이다. 이것을 아는 식당이 100년을 간다. 이 식당 주인은 이 100년 가는 식당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매일 매일 고민하고 있었다.
8.
이 식당의 이름은 목포에 있는 '장수옥 설렁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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