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을 화덕에 구워보면 어떨까? 코끼리베이글 이야기
코끼리베이글의 천홍원 대표는 한 때 신용불량자였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제빵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홀에서 일을 하다가 삶의 터닝 포인트를 발견한다. 손님을 응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에 대한 트렌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런 특징들을 하나씩 꼼꼼하게 정리해나갔다. 그리고 ‘내가 제빵 일을 한다면 이런 맛과 식감을 가진 빵을 만들거야’ 라는 심정으로 작은 희망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2017년, 마침내 영등포구 양평동에 베이글 전문점을 연다. 화덕으로 유명한 ‘코끼리베이글’의 시작이었다.
다행히 가게는 오픈 첫날 부터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2019년에는 방송을 타면서 말 그대로 줄 서서 먹는 맛집으로 거듭난 것이다. 오픈 전 인근 코스트코 손님들에게 시식을 권한 프로모션이 큰 역할을 했따. 지금도 개점 1시간 전부터 북적이는 건 기본이고, 주말에는 대기줄이 무려 50m에 이른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코끼리베이글은 현재 용상점과 성수점까지 총 3개 직영점으로 확장을 했다. 작년 10월에 개장한 성수점은 월매출액만 약 3억 원이다. 각 매장의 일평균 베이글 판매량은 1500개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런 코끼리베이글의 성공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실 베이글이 한국에 들어온 지는 30년이 넘는다. 하지만 유난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베이글은 비주류 베이커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담백한 식사빵의 수요가 증가한다. 사람들은 그제야 비로소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베이글의 매력을 알게 됐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식빵, 베이글 등 식사빵에 해당하는 제품형 플레인빵의 2022년 시장 규모는 1227억원이다. 이는 2018년 보다 무려 62% 성장한 수치다. 이른바 식사빵의 시대가 도래했고, 코끼리 베이글은 이 트렌드에 올라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끼리베이글의 성공은 단순히 트렌드로만 설명할 수 없다. 천홍원 대표는 무엇보다 베이글을 반죽의 맛이 아닌 크림치즈나 버터 같은 스프레드의 맛으로 먹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쫄깃한 식감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다 문득 화덕을 떠올린다. 천 대표는 매장용으로 마련한 임대 공간에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화덕을 설치하고 연구에 연구를 이어갔다. 사실 화덕은 베이커리에서 사용하기엔 비효율적인 장비다. 온도 유지를 위해 장작을 보충해 주고, 열이 골고루 전해지도록 빵을 수시로 돌려줘야 해서다. 대량 조리도 힘들다. 그러나 천 대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베이글이 수북이 쌓일 정도로 구우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연구를 이어간다. 화덕 활용법을 완성한 것은 정식 오픈 후 무려 1년이 지나서였다.
코끼리베이글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천 대표는 서울의 재래시장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영감을 얻었다. 그 결과 대추와 무화과처럼 향이 강렬하지만 여러 간식에서 접해 온 덕분에 대중의 거부감이 덜하고, 시금치와 잣처럼 맛이 담백해 베이글 맛을 헤치지 않는 원물들을 선정할 수 있었다. 계절별 식재료의 품질에 따라 메뉴 구색도 조정했다. 가령 시금치의 품질이 아쉬운 여름엔 시금치 베이글 대신 제철 부추로 만든 부추 베이글을 판매하는 식이었다.
2가지 이상의 식재료를 혼합하기도 했다. 시중에는 어니언 베이글, 블루베리 베이글 등 한 가지 재료만 부각된 메뉴가 많다는 점에서 떠올린 발상이었다. 그래서 서로의 맛을 보완해 줄 식재료들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진한 치즈에 상쾌한 올리브를 곁들인 올리브 치즈 베이글, 말랑한 크랜베리에 오도독한 호두로 식감을 더한 호두 크랜베리 베이글, 약간의 짭조름함으로 버터의 풍미를 살린 버터솔트 베이글 등이 탄생할 수 있었다.
화덕을 설치한 탓에 만들어진 색다른 비주얼도 가게의 성공에 한몫 했다. 화덕 앞에서 베이글을 굽는 천 대표의 모습과 진열대에 쌓인 베이글 더미는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래머블한 광경을 연출했다. 매장 벽면을 가득 채운 참나무 장작들 역시 포토존이 됐다. 이런 이유로 웨이팅이 길어지자 천 대표는 과감히 홀 식사 공간을 없앴다. 테이크아웃 전용 매장으로 변경한 후 매출액은 다시 급증했다. 이렇게 포장하러 온 손님들로 이뤄진 장사진은 코끼리베이글의 또 다른 간판이 됐다.
“창업은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이유와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또 실패에 미리 대비해야 합니다. 실패는 정말 무서운 거예요. 한 사람과 가족의 모든 것을 통째로 무너트릴 수 있거든요. 저는 창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성공보다 실패 사례를 더 많이 찾아보라고 해요. 실패 후 극복 과정을 참고해 미리 계획을 짜놓아야 흔들리지 않거든요. 오래 걸리더라도 성공과 실패를 위한 준비를 철저하게 한 뒤 창업했으면 좋겠어요. 인생에 한 방은 없습니다.”
천 대표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이 브랜드가 가져야 할 핵심가치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창업의 이유, 즉 Why가 성명하지 않으면 실패를 겪어도 배울 수 없다. 다시 일어나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이런 나만의 창업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그것이 수많은 브랜드의 성공과 실패를 학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런 학습의 과정을 통해 창업자는 자신의 강점과 기호, 시장의 유행과 트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코끼리베이글은 바로 그런 노력의 결과인 셈읻. 인생에 한 방이 없듯 시장에서의 성공도 마찬가지다. 코끼리베이글의 우직한 발걸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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