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2월의 어느 날, 성수동 대림창고 건물엔 200여 명의 사람들이 가득 모여 한 사람을 향한 열띤 호응을 보내고 있다. 이 날은 이른바 '스몰 브랜드 챔피언스 리그'의 최종 우승자를 가리는 날이다. 무대 위에는 작은 회사 대표가 1년 간 갈고 다듬은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을 999초 동안 피칭하는 중이다. 3분 19초 동안 이어지는 발표를 듣고 후원자(기버) 그룹과 스몰 브랜드(테이커) 그룹은 각자 주어진 몫의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 선택을 받은 회사는 총 1억 원의 기금을 투자받게 된다. 결선 리그에는 총 10개의 스몰 브랜드가 올라온 상태다. 과연 어떤 브랜드가 이런 연말의 꿈 같은 선물을 받게 될까. 2026년의 첫 날, 나는 카페에 앉아 이런 꿈을 꾸고 있다.
스몰 브랜드에 진심인 한 남자가 있다. 그가 작은 브랜드에 진심인 이유는 단순하다. 그 자신이 스몰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개인 사업자로 독립한 지 8년 차, 많은 이들의 도움을 얻어 사업과 가족의 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만난 스몰 브랜드들, 즉 식당이나 병원, 학원, 작은 사업자들이 100여 명에 이른다. 그는 이들의 브랜드를 컨설팅하며 그들의 희망과 좌절, 현실과 꿈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작지만 강한 브랜드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6,70년대 생들의 퇴직 시점이 다가오면서 자의든 타의든 다시 출발해야 하는 개인과 작은 회사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회사들 환경 변화와 비용 절감을 위해 아웃소싱을 더욱 늘리는 중이다. AI의 등장은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많은 이들이 좋든 싫든 앞으로의 시간을 스몰 브랜드로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스몰 브랜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단지 규모의 작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제 막 퇴직한 대기업 김 부장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퇴직금으로 식당이나 치킨집, 프랜차이즈를 하는 경우는 다소 나은 편이다. 뭐라도 한다는 마음으로 택배나 대리 기사, 경비원을 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규모가 작은 회사도 나이 때문에 여러가지로 마땅치 않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자신이 수십 년간 쌓은 노하우를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살아남은 스몰 브랜드는 '작지만 강하다'. 규모가 아닌 차별화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스몰 브랜드란 단순한 규모의 작음이 아닌 '뾰족한 자기다움'을 무장한 스몰 자이언츠들이다. 그런 브랜드들이 서로 경쟁하며 자신의 사업을 피칭하는 과정은 얼마나 뜨겁고 치열할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스몰 브랜드는 아무래도 소수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만난 개인이나 작은 회사들은 한결같이 돈과 사람과 시간, 그리고 아이디어와 마케팅, 홍보 등의 부족을 호소해오곤 했다. 그래서 어느 해인가는 이런 분들을 모아 '스몰 브랜드 연대'란 모임을 운영했다. 100여 명이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국내의 내노라 하는 전문가들을 모아 강연을 하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1년을 운영하며 예상치 못한 다양한 어려움과 한계를 느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 모이니 정작 도움을 줄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유명한 마케터의 강연은 유튜브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겐 실제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홀로 하는 경영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노하우와 조언,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던 지난 해 12월의 어느 날, 100억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스타트업을 10년 간 운영했던 한 스타트업 대표를 만났다. 무러 70억의 투자를 유치했던 이 대표는 뜻하지 않은 실수로 인해 재기를 노리는 중이었다. 함께 일했던 시간을 회고하다가 문득 스몰 브랜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다행히 그의 주변에는 투자의 여력이 있는 다양한 사업가와 회사들과의 연결 고리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투자자 입장에서 무엇이 매력적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기부 혹은 투자의 여력이 있는 분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그들에겐 단순한 투자 이상의 명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분들의 책을 써드리면 어떨까. 내가 지난 8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일이다. 여기에 스타트업 대표의 마케팅 능력이 더해지만 그분들의 브랜딩도 도와드릴 수 있다. 후원자(기버)는 1년 동안 자신을 롤모델로 하는 수백 명의 스몰 브랜드들과 만나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아름답고 생산적인 공생의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2026년의 첫 날, 카페에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곰곰히 생각해본다. 이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할까? 과연 호응해주는 개인이나 회사가 있을까? 나라면 후원이나 투자, 기부를 고민해볼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들의 조언과 도움을 기다리는 작은 회사나 개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단순한 정부의 지원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고 변화이다. 좋든 싫든 자신의 업을 나이 50에 새로 시작해야 하는 개인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60년대 생 베이비 부머 세대만 900만에 달한다. 내 또래의 70년 대 생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사람들(내 친구를 포함한)을 위한 선택지가 많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20년은 더 일해야 한다. 나는 이들 모두가 잠재적인 스몰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이 누군가. 자신의 업에서 수십 년의 경험치와 지식을 쌓은 이들이 아닌가. 한때 대기업의 마케터나 기획자, 생산 책임자로 일하던 이들이 대리운전이나 택배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너무 아까운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꿈을 꾼다. 내가 바라고 기대하는 바는 소박하다. 500만 원의 투자가 가능한 20명의 후원자나 기업을 찾는 일이다. 이렇게 만든 1억 원의 기금을 글의 서두에 말한 행사에서 가능성 있는 스몰 브랜드에 투자하고 싶다. 그리고 연말의 이 행사를 위해 1년 간 가능성 있는 스몰 브랜드를 발굴해 후원자의 경험과 노하우, 재정적인 지원과 연결해보고 싶다. 나 역시 스몰 브랜드를 돕기 위해 아예 출판사를 차리고 관련된 책을 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작지만 강한 스몰 브랜드들이 적지 않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테이커(스몰 브랜드), 도움을 주고 싶은 기버(후원자, 투자자)들을 연결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혹시 원자폭탄처럼 각각의 원자들이 서로 충돌하며 거대한 긍정의 폭발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나는 꿈 꾸는 이상주의자와는 거리가 멀다. 당장 미대와 음대를 지원하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매달 생계를 위해 강의와 책과 노하우를 팔아야 하는 아주 작은 스몰 브랜드다. 한 달을 먹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일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신용 불량자나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는 돈 없는 자들에게 그렇게 친절한 나라가 아닌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와이프도 2년 째 식당에서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은 꿈을 꾼다. 나이 50이 먹어도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재력은 있으나 온통 돈만을 노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러나 뜻깊은 일에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같은 꿈을 꾸는 분들을 찾아나서고 싶다. 왜냐하면 그 두 그룹이 만나는 일은 그들에게도, 이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대마불사,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그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사람들은 더이상 매스미디어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개성과 취향에 부합하는 작은 브랜드들을 선호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에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차별화된 스몰 브랜드들은 앞으로도 더 많이 생겨나고 성장할 것이다. 나는 그런 스몰 브랜드가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큰 기업은 큰 기업대로 필요와 역할이 있다. 하지만 모두가 대기업에 들어가 일할 수 없다. 그 길이 안전하고 편한 길만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장점과 역량, 개성을 살린 스몰 브랜드는 작지만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대기업에 다니는 내 친구는 나를 부러워한다. 나이 70이 되어서도 내가 지금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꿈을 꾸고 싶다. 그리고 그 꿈이 나 같은 스몰 브랜드는 물론, 누군가를 돕는 것에서 보람을 찾는 후원자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회사 밖은 지옥이라며 어떻게든 눈물 겹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이봐, 친구야, 회사 밖을 나와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 멋진 기회들이 기다리고 있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나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성냥 하나를 켠다. 이 작은 불이 그냥 꺼져버릴지, 아니면 수많은 장적 더미로 옮겨 붙어 새로운 희망의 불길로 이어질지 나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부싯돌을 부딪혀 보려 한다. 이 땅에 작지만 강한, 그리고 지속가능한 스몰 브랜드들이 더 많아지는 그런 세상을 향한 꿈을 꾸고자 한다. 부디 이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꽃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