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으로 창업한 지 8년 차다. 아침 7시부터 영업하는 카페의 문을 열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다. 노트북과 함께 커피 사진을 찍어 투병 중인 친구에게 톡을 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은 카페 가까운 순댓국집에 가서 양파는 양껏 먹고 밥은 반공기만 먹는 것으로 빈 속을 채운다. 미팅과 집필이 이어지는 가운데 틈틈히 홀로 영화를 본다. 만화방을 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위태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인가. 다음 달 수입을 전혀 보장받지 못한 채 그렇게 8년을 견뎌왔다. 그동안 5수를 했던 아들은 실용음악과에 진학했다. 한 달 학원비만 200에 가까운 둘째 입시가 남았지만 괜찮다. 어떻게든 될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그 사이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회사는 더 이상 사람을 뽑지 않고 아웃소싱을 준다. 나같은 70년대 생 베이버부머 세대를 정점으로 인구는 절벽을 만나 갈수록 '소비자'들은 줄고 있다. 그 와중에 난데없이 나타난 AI로 인해 이미 세무사나 변호사 같은 업종은 신입을 뽑지 않는다고 한다. 박경리 작가의 작품을 빗대어 말하자면 '그 많던 일자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수명은 길어져 많은 사람들이 갈 길을 몰라하며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만 해도 최소한 20년은 더 일해야 할 각오로 50대를 지나고 있다. 어디 나만 그럴까. 이제 좋든 싫든 우리는 '각자도생'의 삶을 또 한 번 살아야 한다. 대학 입시와 취업, 결혼과 은퇴가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었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 앞에 우리는 그렇게 내던져지고 있다.
얼마 전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매거진 B'나 '롱블랙' 같은 콘텐츠를 끊으라는 얘기를 했다. 물론 이들 매거진이 안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략 20년, 브랜드와 마케팅을 어깨 너머로 배운 나로써는 홀로 창업의 모든 과정을 감당해야 하는, 하루 하루 생명 연장의 신공을 펼쳐야 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트렌디하고 핫하고 멋진' 성공 스토리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심스러워서였다. 나만 해도 그렇다. 7년 간 브랜딩에 관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홀로 독립을 선언했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 건 브랜드 지식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 시장이 나를 필요로 하는 지점을 찾기 위한 처절하고도 절박한 사투의 연속이었다. 홀로 산 속에 던져지면 두 가지 길 밖에 없다. 굶어죽든 평소에는 시도도 않던 먹거리를 씹어먹고 견디는 것, 그 갈림길 밖에 없다.
와이프만 해도 그렇다. 나의 불안하고 비정기적인 수입으로 인해 아내는 식당에서 홀 매니저 일을 시작했다. 작지만 그래도 한 때 제약회사의 연구원이었던 사람이다. 식당 일이 서러워 홀로 울 때 와이프는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진상 짓을 해도 저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맘 놓고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매일 '피곤하다'는 소시를 달고 살던 와이프는 급기야 셰프 두 명을 갈아치우고 아예 주방으로 들어가 일을 하는 중이다. 그 동안 매출은 30% 이상 성장했고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 과정에 브랜드나 마케팅 지식 따윈 필요 없었다.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있었을 뿐이다. 가난한 식당 형편에 마케팅은 언감생심, 오피스 디포에 가서 종이와 매직을 사서 중국어 포스터를 직접 그려낼 만큼 와이프는 생존에 진심이었다. 그녀에겐 매거진 B와 롱블랙을 읽을 시간도, 이해하고 음미한 여유 자체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와이프가 '진짜' 브랜딩과 마케팅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쯤해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나는 나이와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창업의 첫 단추가 '자기 이해와 발견'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일단 나는 조직보다는 홀로 일하는데 익숙한 사람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한다. 무엇보다 '지적인 자극'에서 삶의 에너지를 찾는다. 그런 나에게 작은 브랜드에 맞는 마케팅과 브랜딩을 연구하고 컨설팅하고 모임을 만들고 책을 만드는 일이 너무 잘 맞았다. 하지만 그 여정에 있어 '전략'은 없었다. 그저 시장의 필요와 나의 재능, 역량이 맞닿는지점을 찾는데 집중했다. 출판사를 만든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작지만 성공한 회사들의 대표는 자신의 '업'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싶어했다. 나는 그 필요를 따라 출판업 등록을 하고 책을 만들었을 뿐이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머리 좋고 똑똑하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네 식당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나름의 업력과 노하우에 더 가깝다. 적어도 스몰 브랜드에 한해서는 말이다.
3년 차 식당을 운영 중인 와이프도 똑같이 말한다. 식당 창업은 제약업 못지 않게 전문적인 일이기에 절대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사람' 공부가 가장 먼저라고 말한다. 손님을 만족시키는 것 만큼이나 툭하면 앞치마 걷고 튈 생각만 하는 셰프의 곤조와 MZ 세대 알바를 다루는 법을 익히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와이프는 사람을 다루는 뛰어난 용병술?을 가졌다. 나는 폐업 비용이 없어서 아내에게 홀 운영을 맡겼던 식당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와이프의 식당은 인근에서 알바에게 가장 인기있는 일자리다. 수많은 당근 알바 리뷰가 이를 증명한다. 왠줄 아는가. 와이프는 MZ 세대 알바들에게 절대로 사적인 질문을 하지 않는다. 꼰대짓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일만 가지고 공평하게 대우해도 알바생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그것은 아마 아내 특유의 쿨한 친화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각자도생의 시대에 던져져 홀로 '창업'을 고민 중인 사람들이라면 그럴싸한 이론으로 가득한 책 대신에 '나를 이해하고 발견'하는 일에 집중해보자. 하다 못해 '강점 발견' 책을 구매해서 Stength Finder 검사부터 해보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성과를 내는지, 어떤 일을 해야 지치지 않고 견대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자. 멋진 사업계획서와 그럴싸한 마케팅 이론을 찾기 보다 내게 어울리는 비슷한 업종을 찾아 알바를 하거나 테스트를 해보자. 길거리에서 양말을 팔 용기가 없는 사람이 날고 기는 고수들이 즐비한 시장에서 어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3,4년은 '생존'을 목표로 일할 각오를 해야 한다. 브랜드가 말하는 가치와 철학은 그 과정에서 서서히 싹을 틔울 것이다. 성공한 이들의 경험에서 공짜로 얻을 생각은 하지 말자. 솔직히 말하면 그들도 그들 자신의 성공 이유를 잘 모른다. 나같은 전문 이야기꾼들이 잘 포장해주는 경우가 더 많다고 장담할 수 있다.
나는 직장에서 빈틈이 많은 기획이자 루저였다. 내가 쓴 글은 가볍고 논리가 빈약하다고 비판 받았다. 하지만 정작 시장에 나오니 내 짧은 브랜딩, 마케팅 이야기가 오히려 쉽게 이해한다며 좋아해주었다. 나는 조그만 식당, 병원, 학원, 개인의 성공 이야기에서 내가 배운 이론의 빈틈을 찾을 수 있었다. 기본 몇 백억 매출을 하는 회사의 브랜딩과 홀로 일하는 사장님의 마케팅이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답은 시장에 있다. 시장이 원하는 것이 답이다. 나는 조직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고 리더십은 어디 갖다 쓰려고 해도 없는 그런 무능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홀로 일한 지 8년 차, 얼마든지 회사 없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지금 같이 일하는 개인과 회사만 십여 개를 헤아린다. 내가 엄청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들이 딱 필요한 만큼을 내가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이다.
마케팅과 브랜딩의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장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일이다. 소비자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안방 벽에 못 하나 박는데 굴착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기업의 비싼 굴착기로 안방에 못을 박고 싶어한다. 왠지 그래야만 그럴 듯하고 폼이 날 것 같아서다. 그렇지 않다. 그렇게 세상이 필요로 하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시장의 필요와 욕망을 찾아가는 일이 바로 브랜딩이고 마케팅이다. 그렇다면 내가 작은 망치인지 송곳인지 니퍼인지 펜치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필요를 채우고 매출을 올릴 수 있다. 그 일이 내게 맞는 일이라면 돈도 벌고 칭찬도 듣고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유명한 브랜드도 그 시작은 대부분 그렇게 작은 '나를 발견'하는 일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이키가 그랬고, 펭귄북스가 그랬고, 티파니앤코도 그랬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을 친구로, 동료로 만들어 도움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보자. 그것이 바로 '진짜' 브랜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