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그리고 셔츠 한 장
그날은 지인 부모님을 조문하러 부산에 내려간 날이었다. 검은색 셔츠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근처 백화점을 찾았다. 조문 후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일정이라 마음이 급했다. 남성복 전문점은 5층에 있었다. 마침 셔츠 전문점 간판에 눈에 들어왔다. 사이즈를 말하고 셔츠 한 장을 집어든 채 탈의실에 들어갔다. 그때 알아봤어야 했다. 옷걸이 하나 없는 지저분한 그 공간에서 셔츠를 입어보니 팔이 길었다. 다른 사이즈를 부탁했다. 급하게 옷을 찾던 주인이 마땅한 사이즈가 안보이는지 눈 앞에서 사라졌다.
5분인지 10분인지, 내게는 길고 긴 시간이 다시금 흘러갔다. 초조했다. 조문 후 서울로 올라가기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나타난 주인의 손에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검은색 셔츠 한 장이 들려 있었다. 이건 뭐지? 아무리 옷을 팔고 싶어도 그렇지 어디서 꺼내온 것인지도 모를 셔츠를 보자 나도 모르게 표정이 일그러졌다.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아 급해서 다른 데 가겠다고 했더니 다려주겠다고 한다. 5분이면 다린단다. 더 어이가 없었다. 말이 안통하겠다 싶어서 말없이 바로 옆 매장으로 향했다. 필요한 사이즈의 포장된 옷이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씩씩하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계산을 마치고 급히 나오는데 이전 가게의 주인이 옷을 펼쳐든채 내 앞을 막아섰다. '손님, 그렇게 입어보지도 않고 살거면 이 옷을 사셔야지' 으응? 어디서 꺼내온지도 모를 그 옷을 다려서 입으라고? 갑자기 혼란스러워 당황한 내게 분노 어린 주인의 눈빛과 표정이 마스크 너머로 그대로 전해온다. 뭐라고 해줘야 할 듯 한데 입만 옹알거리게 된다. 나는 그렇게 쫓기듯 5층을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내내 혼잣말을 했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 된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거지? 그냥 2만 9천원 짜리 셔츠 한 장에 이리도 목을 매야 한단 말인가. 주인은 뭐가 그리고 억울하고 서럽길래 셔츠 한 장 사러온 나의 앞길을 막아서야 한단 말인가.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개장 첫 손님이 파토를 놨으니 말이다. 그러나 손님인 내가 그런 마음까지 챙길 필요가 있을까. 나는 그냥 내 몸에 맞는 깨끗한 셔츠 한 장을 바랬을 뿐이다. 대단한 서비스나 환대를 바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주인은 그렇게까지 분노했을까. 아마도 그건 욕망 아니었을까? 배신감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깔끔하게 첫 손님에게 옷을 팔아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에게 손님의 기분, 마음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눈 앞에서 손님을 도둑 맞은 억울함만 가득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곳은 백화점이다. 그것도 부산 해운대의 가장 비싼 길목에 우뚝 선 서비스의 정점인 곳이다. 동네 보세 옷가게라면 뭐 그런가보다 하겠다. 그런데 도심 한가운데의 백화점에서 이런 서비스는 곤란하지 않은가.
나는 그 주인장이 마스크 너머로 들려오던 억울함과 분노의 포효를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굳이 매장을 나와 가는 길을 막고 셔츠를 펼쳐든채 뭐라 뭐라 사투리를 뱉어내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녀가 유독 내게만 그랬을리는 없다고 생각하니 암담해진다. 얼마나 많은 손님과 관광객과 외국인들이 그런 서비스를 계속 받게 될 것인가. 물건만 팔고 보자는 이 매장엔 마케팅도 브랜딩도 없다. 그저 첫 손님을 빼앗긴 욕망만 가득할 뿐이다. 그러나 손님은 백화점에서 물건만 사지 않는다. 기분 좋은 경험을 함께 기대한다. 그런데 이 백화점은 기본이 안되어 있다. 그러니 부산에 가면 해운대역 앞 이 백화점은, 5층은, 그 곳의 셔츠 매장은 절대 가지 마시라. 굳이 최악의 서비스를 몸소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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