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작가인 침착맨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충주맨 김선태는 더 이상 공무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누구보다 활발하게 활동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딜이 단지 유능하고 유명해서일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런데 다른 사례들을 보면 이들의 활약은 더 선명해진다. 한때 최고의 직업이라 불리던 기자들은 이제 '기레기'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선망하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와 디자이너들은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 모든 변화의 진원지는 하나다. 인터넷이 개인과 개인을 직접 연결하고, 거기에 AI가 사고와 생산의 영역까지 대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솔직히 6개월 후의 세상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면, 이 변화가 그렇게 낯선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온 사회가 생존을 위해 생산성에 올인해야 했던 시대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인류 최고의 문화와 예술, 철학을 꽃피웠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 대부분이 직접 노동을 하지 않았다. 그 역할은 노예가 맡았고, 시민들은 사유하고 토론하고 창작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도 마찬가지였다.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 예술가와 철학자들은 생산의 의무에서 벗어나 인류 문명의 정수를 남겼다. 어쩌면 AI가 생산의 짐을 덜어주는 지금,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르네상스를 앞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전혀 다른 미래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지만 여기선 좋은 시나리오를 따라가보자)
그렇다면 달라진 시대는 어떤 사람을 원할까. 분명한 건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주어진 형식에 맞춰 결과물을 뽑아내는 능력은 이미 AI가 인간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침착맨, 기안84, 김선태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기 삶과 일에 대한 분명한 스타일이 있다. 자기만의 개성, 취향, 철학이 있고, 그것을 세상에 거리낌 없이 드러낼 줄 안다. 기안84의 그림은 다소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세계관이 있다. 침착맨의 콘텐츠는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어렵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과 유머에는 그만의 인생관이 녹아 있다. 사람들은 그 '결'에 공명하고, 팬덤이 생겨났다. 이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AI는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만의 프롬프트를 넣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결국 AI는 도구이고, 그 도구에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결과의 질을 결정한다. 좋은 질문은 좋은 생각에서 나오고, 좋은 생각은 오랜 시간 자기만의 관점을 다듬어온 사람에게서 나온다. 앞으로의 펼쳐질 시대는 단순히 글을 대신 써주는 사람, 광고를 대신 만들어주는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생각해낼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나답게 사는 사람'이라 부른다. 그들은 유행을 쫓지 않고,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기준을 먼저 묻는다. 당장은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때로는 고집스럽고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 고집과 이상함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쩌면 이것일지 모른다. 나는 지금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어가는 리더는 가장 많이 아는 사람도, 가장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도 아닐 것이다. 세상에 자신만의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